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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00년이 넘는 동안 이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는 식지 않을까요?

1편에서는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 믿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십자가도 모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도 처음에는 모두 그랬습니다. 목사님도, 선교사도, 이천 년 전의 베드로도요. 믿는 집에서 자란 아이도 언젠가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이게 정말일까?"

그러니까 지금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언젠가 처음 들은 날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처음 들은 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2. 처음 들은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솔직히, 웃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니요. 그것도 죄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이 하나님이라니요.

이천 년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바울이 철학자들의 도시 아덴(아테네)에서 부활 이야기를 꺼내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사도행전 17:32). 로마 총독 베스도는 재판정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쳤구나!"(사도행전 26:24)

로마의 옛 건물 벽에서는 낙서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당나귀 머리를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있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알렉사메노스가 자기 신에게 절한다." 서기 200년 무렵, 누군가 믿는 친구를 놀리려고 그린 그림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것을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이야기가 듣는 사람 눈에는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스스로 적었습니다(고린도전서 1:23).

3. 비웃던 사람들이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비웃음에는 꼭 따라붙는 것이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증거 있어?" "누가 봤는데?" "봤다는 사람, 지금 어디 있어?"

비꼬려고 던진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고 대답을 했습니다.

바울은 살아난 예수를 본 사람이 오백 명이 넘고, 그 가운데 절반 넘게 아직 살아 있다고 편지에 썼습니다(고린도전서 15:6).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베스도 총독이 미쳤다고 소리쳤을 때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몰래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사도행전 26:25-26)

의사였던 누가는 예수의 이야기를 쓰기 전에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폈다"고 밝혔습니다(누가복음 1:3). 베뢰아라는 도시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도 덮어놓고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런가" 하며 날마다 성경을 뒤져 보았습니다(사도행전 17:11). 성경은 그 사람들을 꾸짖지 않고 칭찬합니다.

비웃던 사람들은 그렇게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믿으려고가 아니라, 틀렸다는 것을 밝히려고요.

4.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거짓말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꼬치꼬치 따져 물으면 금방 들통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옛날 옛적 어느 먼 나라에"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확인할 수 없게요.

성경은 거꾸로 합니다. 어느 황제 때, 어느 총독 밑에서,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인지 이름을 하나하나 댑니다(누가복음 3:1). 그때 살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사람 없었는데?" 하고 따질 수 있게요.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꾸며 낸 이야기라면 주인공들을 멋지게 그렸을 텐데, 성경 속 제자들은 하나같이 못났습니다. 겁이 나서 도망칩니다. 으뜸 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잡아뗍니다(베드로의 부인). 빈 무덤을 처음 본 사람은 여자들이었는데, 그 시대에는 여자의 말을 법정에서 증언으로 잘 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굳이 이렇게 썼을까요? 부끄러워도 있었던 대로 적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5. 땅속에서 이름들이 나왔습니다

따져 묻는 사람들은 성경 밖으로도 나갔습니다.

먼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남긴 글을 뒤졌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을 몹시 싫어한 사람인데, 자기 책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때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당한 사람이라고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예수와 그 동생 야고보를 이야기합니다. 예수가 실제로 살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오늘날 믿지 않는 역사학자들도 거의 다 받아들입니다.

그다음에는 땅을 팠습니다.

  • 1947년, 사해 근처 동굴에서 양치기 소년이 항아리에 담긴 두루마리를 찾았습니다(사해 사본). 그때까지 남아 있던 것보다 천 년쯤 더 오래된 성경이었습니다. 펴 보니 지금 우리가 읽는 내용과 거의 같았습니다. 천 년 동안 손으로 베껴 쓰면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 1961년, 이스라엘 바닷가의 옛 극장 터에서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돌이 나왔습니다.
  • 1993년, '다윗의 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텔 단 비문). 다윗은 전설 속 임금일 뿐이라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 2004년, 예루살렘에서 하수도 공사를 하다가 실로암 못의 돌계단이 드러났습니다. 예수가 눈먼 사람을 보내 눈을 씻게 했다는 바로 그 못입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돌과 두루마리가 부활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도 삽으로 파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성경은 없는 나라의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성경 고고학).

6. 가장 의심 많던 사람들

이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틀렸다는 것을 밝히려고 파고든 사람들 가운데, 믿게 된 사람이 자꾸 나온 것입니다.

  • 도마: 예수의 제자였지만 다른 제자들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기 전에는 안 믿는다"고 버텼습니다(요한복음 20:25).
  • 야고보: 예수의 동생입니다. 한집에서 같이 자란 형이 하나님이라니, 믿을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동생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적습니다(요한복음 7:5). 그런 그가 훗날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그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 바울: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러 다니던 사람입니다(바울의 회심). 가장 무섭게 반대하던 사람이 가장 멀리까지 이 이야기를 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 젊은 시절 성경을 펴 보고는 글이 시시하다며 덮어 버린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 여러 해를 헤맨 끝에 돌아와, 교회 역사에서 손꼽히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 C. S. 루이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선생이었고 신은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따지고 또 따지다가 끝내 믿게 되었는데, 그날의 자신을 "영국에서 가장 풀이 죽은, 마지못한 회심자"라고 불렀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바로 그 사람입니다.
  • 리 스트로벨: 미국 신문사의 법률 담당 기자였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자, 기자답게 증거를 캐서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이 년 가까이 캐물은 끝에 본인이 믿게 되었습니다.
  • 이어령: 우리나라의 첫 문화부 장관이었고, 오랫동안 '지성'을 대표하던 사람입니다. 일흔이 넘어 세례를 받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습니다.

물론 파고든 사람이 모두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고개를 저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이야기는 묻지 못하게 막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이천 년 동안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받으면서 살아남았습니다.

7. 그래서, 미친 것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가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일요일 아침마다 성경을 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속아서, 정신이 나가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이천 년 전 아덴의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과 다르지 않았고, 그 질문을 붙들고 끝까지 가 본 사람들의 대답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증거가 사람을 믿음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증거는 문 앞까지만 데려다줍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의심 많던 도마가 마침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고 고백했을 때,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한복음 20:29

믿는 사람들은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생기는 일 자체를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의심 많던 사람이 가장 굳게 믿게 되는 일. 이 이야기가 이천 년 동안 식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갑니다

이 이야기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맨 처음 한 일이 있습니다. 모인 것입니다. 성경은 첫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적습니다. 함께 가르침을 받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기도했다고요(사도행전 2:42).

왜 모였을까요?

혼자서는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순여섯 권이나 되는 두꺼운 책입니다. 읽을수록 궁금한 것이 늘어납니다. 그럴 때 먼저 읽어 본 사람이 곁에 있으면 훨씬 쉽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함께 예배하는 시간 말고도 성경공부 모임이 있고, 처음 온 사람을 위한 새가족반이 있고,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가 있습니다.

또, 믿음은 머리로 아는 데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건 혼자서는 연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가 공부를 이어 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 알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알고 싶어서 갑니다.

9. 와서 보세요

예수의 소문을 처음 들은 나다나엘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나사렛 같은 시골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어?" 친구 빌립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와 보라. — 요한복음 1:46

교회위키는 그 한 걸음을 쉽게 내딛도록 만든 곳입니다.

  • 가까운 교회 찾기: 전국 6만 곳이 넘는 교회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 동네 교회를 목록과 지도에서 찾고, 어떤 교회인지 미리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가기 전에 미리 배우기: 처음 가면 무엇을 하는지(새신자, 예배), 낯선 낱말은 무슨 뜻인지 교회백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성경 직접 읽기: 성경 전체를 이곳에서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의심을 품은 채로 와도 괜찮습니다. 이천 년 동안 이 문을 두드린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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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역사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성경의 배경과 인물이 실제였음을 보여 줄 뿐 신앙의 내용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자료의 해석은 학자마다 다릅니다. 교회백과의 각 문서와 토론에서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