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서울 종로구 · 예장통합 · 담임 이상학 담임목사 확인됨
1. 개요 [정보 수정 제안]
새문안교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예장통합 소속 교회이다. 담임 교역자는 이상학 담임목사이다.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이상학 새문안교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현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인생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희망을 하나님에게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요, 신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세계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세계는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어서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지만, 발견하고 알아갈수록 가장 큰 기쁨과 평화의 감격을 우리에게 선물해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여정에 교회 공동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교회를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 성도에게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젖줄이고, 모태입니다. 교회를 신앙에 중심에 둘 때 신앙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새문안교회는 1887년에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조직교회입니다. 새문안교회는 지난 130여년간 우리 민족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개척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 왔습니다. 새문안교회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어
대한민국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조선 말 언더우드학당(경신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을 세운 미국의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1887년에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장로교 조직교회이며, '대한민국 개신교의 어머니교회'로 불리고 있다.# 김규식, 안창호, 최현배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191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지난 2019년 이은석 건축가가 설계한 여섯 번째 예배당을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
여성에 세례 주고 대의제 운영… 첫 선교사 '신촌 원씨'가 세운 어머니 교회 (조선일보 2025년 4월 4일)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1885년 4월 5일,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와 함께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하며 한국에 개신교 복음을 처음 전한 인물 중 하나였다. 언더우드는 입국 2년 후인 1887년 9월 27일, 한국인 세례교인 14명과 함께 교회의 조직을 갖추고 2인을 장로로 세워 당회를 구성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로서 새문안교회를 창립하였다.
당회의 조직은 장로교회 전통의 대의제적 구조를 도입한 것으로, 이는 한국 사회에서 근대 민주주의적 제도가 실질적으로 적용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후 새문안교회는 신앙 규율을 엄격히 관리하며 교인 생활을 지도했으며, 1910년 당회록에는 첩을 들이거나 무속행위를 한 신도들을 제명한 기록도 남아 있다.
설립 초기부터 여성의 역할에도 주목하였다. 언더우드는 1888년 여성 신도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창덕’, ‘석은’, ‘영은’ 등의 이름을 부여하며 교회 내 지도력으로 양성하였다. 여성 조사와 권서를 통해 적극적인 전도 활동을 독려하였으며, 여성 성경 공부 모임도 활발히 운영되었다. 이 과정에서 언더우드의 아내인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의 헌신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는 새문안교회 외에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기독교대학[경신학교/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주도하고, 한글 연구와 성경 번역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근대화에 기여하였다. 1912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초대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1916년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새문안교회 앞에는 1927년 장로교단 통합기념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세운 ‘박사원두우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는 언더우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자 장로교회의 통합 전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언더우드 가문
"뉴욕 부호보다 선교사" 새문안교회·연세대 세우고 청년 교육 (조선일보 2024년 11월 23일)
언더우드 가문은 19세기 말부터 한국 개신교 선교와 교육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가문으로, 특히 셋째 아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의 활약이 중심이 되었다. 영국에서 출생하여 13세 때 미국으로 이민한 언더우드는 뉴저지의 뉴브런즈윅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해외 선교의 소명을 자각하였고, 1885년 조선에 도착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중 한 명이 되었다.
가훈은 “불가능은 웃어넘기고,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말하라”였으며, 부모는 다섯 자녀 중 가장 총명했던 호러스에게 선교사 교육을 집중시켰다. 언더우드는 조선에서 새문안교회(1887), 경신학교(1886), 조선기독교대학(1915, 연세대학교의 전신) 등을 세우며 복음 전파와 교육, 근대화에 기여하였다. 조선에서 활동한 기간은 30여 년에 이르며, 선교 활동 중 고아였던 김규식을 돌보고 교육시킨 일화도 전해진다.
언더우드의 형 존 T. 언더우드(1857~1937)는 언더우드 타자기를 개발하고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로, 20세기 초 타자기 시장을 석권하며 "당대의 스티브 잡스"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는 동생이 선교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약 15만 달러를 기부하였으며, 이 중 일부는 연세대학교 본관인 석조 건물 ‘언더우드관’ 건립에 사용되었다.
1898년 형이 뉴욕으로 돌아와 사업을 도우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언더우드는 이를 거절하며 “뉴욕에서 백만장자로 사는 것보다 조선에서 영혼을 구하는 선교사로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언더우드가 자신의 소명을 얼마나 확고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언더우드는 건강 악화로 1916년 미국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났고, 고향인 뉴저지주 노스버건의 그로브 개혁 교회 묘지에 묻혔다. 생전 그는 “조선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남겼지만, 가족은 그의 뜻을 따르기보다 장례비를 조선의 교육 기관 지원에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1999년에서야 언더우드의 유해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이장되었다.
언더우드 가문은 이후에도 4대에 걸쳐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가문의 전통에 따라 “언더우드가 해냈다”는 표현 대신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신앙적 겸손을 실천하고 있다.
19세기 말 조선의 사회적 전환기
근·현대 서구화와 기독교 수용의 주역들 (월간중앙 2020년 8월 20일)
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침입, 과 같은 정치적 혼란, 그리고 서구 문물에 대한 경계심이 혼재한 시기였다.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신교의 유입은 단순한 종교 전파를 넘어 교육, 의료, 출판 등 근대화 전반에 영향을 끼친 복합적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교육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감리교 소속의 헨리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개신교의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직전의 갑신정변으로 인해 서양 문물에 대한 민심의 반감이 높았고, 아펜젤러는 일시적으로 일본으로 철수하기도 했다. 반면, 언더우드는 순교의 각오로 한양에 남아 의료, 교육, 복음 선교를 병행하였다.
언더우드는 제중원에서 호러스 알렌을 도와 의료 실무에 참여하며 서양의학을 보급했고, 이후 고아원 겸 교육기관인 ‘언더우드 학당’(후일 경신학교)을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김규식,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며 민족 계몽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자택에서 소규모 예배를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복음 선교도 점차 확산되었다.
한편, 외국 선교사들의 활동과 병행하여, 성경을 한글로 번역·보급한 조선 지식인들에 의한 자생적 신앙 공동체도 전국 각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중 일부는 황해도 소래, 평양, 의주 등지에서 시작되어 선교사 도착 이전부터 선교 기반을 닦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 신자들과의 만남은 선교사들이 한국 사회에서 공식 선교를 확산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1887년 새문안교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언더우드는 개성, 평양, 의주 등지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자생적으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들을 미국 북장로교 체제 안으로 통합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개신교가 평안도, 황해도 등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 장로교가 한국 개신교 내 주류 교단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의 수용은 외래 선교사에 의한 일방적 전파가 아니라, 조선 민중의 주체적인 신앙 수용과 한글 성경을 통한 자각적 접근의 결과로 평가된다. 이는 과거 불교·성리학·천주교의 전파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외래 종교가 정착하는 데 있어 민족적 자각과 지식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연세대학교와의 관계
연세대 설립자는 언더우드?... 연세대 초기 역사 다룬 책 나와 (국민일보 2015년 4월 4일)
새문안교회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연세대학교의 형성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연세대학교는 195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통합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각각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연희전문학교는 1885년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에서 시작된다. 이 학교는 이후 경신학교 등으로 발전하며, 1915년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본부의 후원 아래 ‘연합기독교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다. 같은 해 ‘연희전문학교’라는 교명이 부여되며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설립에는 언더우드의 헌신적 노력과 함께, 그의 형 존 T. 언더우드가 제공한 부지 매입 자금과 건축비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는 1885년 미국 감리교 의료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설립한 광혜원(같은 해 제중원으로 개칭)을 뿌리로 한다. 이 병원은 이후 서양의학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였고
예배시간
- 주일예배
- 예배명 | 예배시간 | 장소 | 비고
- 1부 예배 | 오전 7시 30분 | 대예배실
- 2부 예배 | 오전 9시
- 3부 예배 | 오전 11시 | 영어 동시통역
- 4부 예배 | 오후 1시
- 5부 예배 | 오후 2시 30분 | 청년예배
- 오후 예배 | 오후 5시
- 평일예배
- 예배명 | 예배시간 | 장소 | 비고
- 새벽기도회 | 오전 5시 | 새문안홀 | 월요일 ~ 토요일
- 이른아침예배 | 오전 6시 30분 | 대예배실
- 화요기도회 | 오전 10시 30분 | 언더우드홀
- 수요일예배 | 오후 7시 | 대예배실
- 목요일예배 | 오후 12시 | 대예배실 | 직장인을 위한 예배
- 금요기도회 | 오후 8시 10분 | 대예배실
연혁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가 거주하며 교육/보육/의료 봉사기관들을 운영했던 정동
- 첫 번째 한옥 양식 예배당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의 사택 (1887년 ~ 1895년)
1887년 9월 27일: 제1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사택에서 서상륜 외 14명의 조선인 성도와 존 로스 목사가 참석한 가운데 교회 설립
10월 2일: 조선인 성도 2명 장로 장립
1888년 10월: 한국교회사 처음으로 여성 교인 4명 세례 집례
1891년 9월: 주일학교 개교 (성도 100명, 학생 43명)
1893년: 곤당골교회 개척 (현재 승동교회)
1894년: 연못골교회 개척 (현재 연동교회)
1895년: 경희궁 건너편 한옥 구입, 성전 건축
- 두 번째 한옥 양식 예배당 (1895년 ~ 1910년)
1896년: 잔다리교회 개척 (현재 서교동교회)
1898년: 제직회, 청년회 조직 (성도 531명, 학생 215명)
1906년: 노량교회 개척 (현재 노량진교회)
1907년: 현재 위치로 교회 이전
1910년: 벽돌 예배당 신축
- 세 번째 로마네스크 양식 벽돌 예배당 (1910년 ~ 1949년)
1913년: 성가대, 면려회 조직
1920년 12월 26일: 제2대 차재명 담임목사 부임
1944년 2월 6일: 제3대 김영주 담임목사 부임
- 네 번째 고딕 양식 예배당 (1948년 ~ 1971년)
1949년 9월 30일: 벽돌 예배당 증축
1950년: 김영주 담임목사, 김규식 시무장로 납북으로 당회장직 공석
1951년 6월 25일: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부산직할시로 피난 (교회당: 남성여자중학교)
1951년 12월 2일: 강태국 목사 임시당회장 부임
1955년 12월 1일: 제4대 강신명 담임목사 부임
1972년 11월 26일: 예배당 신축
- 다섯 번째 모더니즘 양식 예배당 (1972년 ~ 2014년)
1981년 4월 25일: 제5대 김동익 담임목사 부임
2000년 9월 17일: 제6대 이수영 담임목사 부임
2007년 9월 30일: 교회건축위원회 조직
2008년 8월 15일: 새성전 건축 설명회
2014년 8월 25일: 구성전 철거 시작
2015년 8월 30일: 새성전 기공예배
2017년 9월 1일: 제7대 이상학 위임목사 부임
2019년 4월 21일: 새성전 입당예배
2019년 11월 23일: 새성전 준공예배
- 여섯 번째 뉴모더니즘 양식 예배당 (2019년 ~ 현재)
새문안아카데미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기념 한국교회음악교육원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기념 한국교회음악교육원, 약칭 새문안교회음악교육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새문안교회의 새문안아카데미이다.
1894년 한국찬송가의 효시가 되었던 <찬양가>를 편찬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교회음악에 대한 공적을 기념하고 예배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가 및 평신도를 양성하기 위하여 1998년에 설립되었다.
2018년에 위임예식을 거행했으나 교회 내부에서는 담임목사 칭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문안교회 홈페이지 담임목사 소개, 2026년 1월 25일 주보).[경신학교/연희전문학교] 흔히 대지의 최대 연면적을 확보하려는 경향성 영락교회 동사목사직을 사임하고 부임했다. 보이다시피 마당에 종이 있다. 매 주일마다 치는 종은 아니고 신년 크리스마스 등에만 쳤었다. 그동안 마지막 황세손으로 알려진 건축가 이구의 작품이라고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예배당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 면적을 확보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 예배당 보존을 검토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도면에 기재된 설계자가 이구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철거가 확정되었다. 종교건축의 권위자인 이은석 건축가가 서인건축과 함께 설계했다. 건축과정에서 교회가 여러 이유로 건축가가 제안한 초기 설계안을 많이 수정하여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의 원안에서 유지된 독특한 외부 곡면(파사드)이 이 건물의 국제 건축계의 주목을 이끌었고, 많이 수정된 내부공간에 대해선 외부에서 느끼는 감동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이은석 건축가의 원안대로 지어졌다면 건물의 완성도가 더 높았을 것이라는 의견과 원안의 일부라도 유지되어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의견이 건축계에 혼재되어 있다. 조창호 소위는 본인이 북한에 억류되고도 끝까지 살아남아 대한민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이유를 군진수칙과 기독교 신앙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동익 담임목사의 배우자 부천아트센터의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제작사. 성도들 중에서는 경기도민도 많으며, 심지어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는 성도도 있다고 한다. 새문안교회 정문과 가까운 곳에서 CU 편의점이 존재한다. 새청년부, 청년1부, 청년2부는 새가족반 교육을 8주가 아닌 5주 정도 받고 등반한다. 실제로 새문안교회에서 일하는 경비원들과 환경미화원들, 교회 건물 1층에 있는 박물관 직원들 모두가 이단 종교 판별에 대한 노하우가 상당하며 인수인계까지 잘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단들은 제발 얼씬도 거리지 말자!!! 음료수 자판기의 경우, 카드 결제나 교통카드 결제가 안 되고 오직 현금 사용만 가능하다. 심지어 이 작은 공원도 새문안교회 측에서 시민들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무료로 개방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단, 이 공원에서 흡연을 하거나 음주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교회 측에서 인정사정없이 경찰에 고발한다고 하니 제발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자!!! 언더우드 음악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건물 안내판에는 언더우드 음악원이라고 적혀 있으며 홈페이지 주소도 underwoodmusic.or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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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치
- 도로명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9 (신문로1가, 새문안교회)
- 지번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240
- 우편번호
- 0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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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 정보
- 전화
- 02-732-1009
- 팩스
- 02-733-8070
- 이메일
- 1004@saemoonan.org
- 홈페이지
- http://www.saemoonan.org 확인됨
- 온라인 채널
- youtube instagram facebook x
- 담임
- 이상학 담임목사
예배 시간
| 주일1부예배 | 오전 7시 30분 |
|---|---|
| 주일2부예배 | 오전 9시 |
| 주일3부예배 | 오전 11시 |
| 주일4부예배 | 오후 1시 |
| 주일5부예배 | 오후 2시 30분 |
| 1부예배 | 오전 7시 30분 |
| 2부예배 | 오전 9시 |
| 3부예배 | 오전 11시 |
| 4부예배 | 오후 1시 |
| 주일찬양예배 | 오후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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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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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토리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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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데이터 출처와 이력
| 출처 | 신뢰도 | 수집일 |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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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통합 주소록 | 90 | 2026-10-25 | new.pck.or.kr/address.php?flag=churchAddress&sc… |
| 카카오 지도 | 80 | 2026-10-26 | place.map.kakao.com/553818334 |
| 카카오 지도 | 80 | 2026-10-13 | place.map.kakao.com/268043617 |
| 교회 홈페이지 | 70 | 2026-10-20 | www.saemoonan.org |
| 나무위키 | 50 | 2026-10-24 | namu.wiki/w/%EC%83%88%EB%AC%B8%EC%95%88%EA%B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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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4 이름(정규화) 새문안교회한국교회음악… → 새문안교회 카카오 지도
- 2026-10-14 교회 이름 새문안교회 한국교회음악… → 새문안교회 카카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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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3 이름(정규화) 새문안교회 → 새문안교회한국교회음악교육원 카카오 지도
- 2026-10-13 교회 이름 새문안교회 → 새문안교회 한국교회음악교육원 카카오 지도
- 2026-10-13 경도 126.9735799 → 126.97357539181 카카오 지도
- 2026-10-13 이름(정규화) 새문안교회한국교회음악… → 새문안교회 카카오 지도
신뢰도: 공공데이터 95 · 교단 총회 90 · 지도 POI 80 · 교회 홈페이지 70. 값이 충돌하면 신뢰도가 높은 출처를 따릅니다. 수집 정책은 여기에 있습니다.




